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만수/선수 경력 (문단 편집) == 전성기 이후 == 기량이 떨어진 1990년대중반에는 거의 나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며 경기가 끝나가면 팬들은 이기건 지건 대타 이만수를 외쳤고 이만수가 나오면 병살을 치든 삼진을 당하든 [[홈런]]을 치든 팬들에게 환호성을 받았다. 그 옛날 에스에스패션(현 [[삼성물산]] 패션부문) 위크엔드[* 후일 [[라피도]], SS311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2007년 판매 부진을 이유로 없어졌다. 이후 [[후부]]가 [[제일모직]] 스포츠 브랜드 중 유일하게 남아 있었으나 역시 2013년에 판매 부진을 이유로 없어졌다. 현재 삼성물산에는 [[빈폴]]이 스포츠는 아니지만 아웃도어 상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[[삼성 라이온즈]]를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.] 광고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. 바로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자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XiVyRuVDjH4)]}}} || 이 때만 해도 이만수는 어린이들에게 그야말로 우상이었다. 당시 야구 선수가 이런 광고에 나올 정도라면 어느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? 초창기 크보의 최고의 인기스타였다. 말년에 대타로 2루타라도 때려내면 원정팀에서도 기립박수를 쳐주기도. 삼진을 당하면 다들 만수바보~ 만수바보하고 관중들이 놀렸는데 그게 비웃는게 아니고 정말 동네 친한 바보형(..)을 놀리듯이 한것으로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. 한편, 1996년 6월 23일 대구에서 열린 [[삼성 라이온즈|삼성]]-[[쌍방울 레이더스|쌍방울]] 경기에서 [[박진석(야구선수)|박진석]]과 빈볼시비로 추격전까지 벌였는데,[* 이만수가 2회와 4회, 박진석에게 2타석 연속으로 볼넷을 맞았다. 그래서 뛰어간것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6062500289119003&editNo=6&printCount=1&publishDate=1996-06-25&officeId=00028&pageNo=19&printNo=2598&publishType=00010|뉴스라이브러리]]] || [[파일:external/blog.jinbo.net/161119351.jpg|width=100%]] || 분명 험악해야 정상인 상황인데 어째서인지 둘의 표정이 훈훈하다. 그래서 관중들은 오히려 재미있어했다고 한다. 이 때 박진석의 발이 너무 빨라서 쫓아가던 이만수가 제풀에 지쳤다고... 그런데 더 웃긴건 이만수가 추격을 하면서 삼성 후배선수들한테 "저거 잡는 사람 내가 빵사준다"라고 했다는 [[카더라]]도 있다.[[http://news.donga.com/3/all/20090219/8698254/1|박진석과 이만수의 술회]] 참고로 이만수를 말리러 뛰어가는 [[이광길]] 코치는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이만수 수석코치와 SK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photo.isportskorea.com/20040109184231103.jpg|width=100%]]}}}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photo.isportskorea.com/20040109184231101.jpg|width=100%]]}}} || |||| {{{#fff '''그의 마지막 현역 선수 시절.[* 이만수의 왼손에 끼워진 미트를 보면 알겠지만 1루수로 뛰던 시절이다. 후술하겠지만 포수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삼성 코칭스태프는 1993년부터 이만수를 포수로 기용하지 않았고 1루수나 대타 요원으로 출전시켰다. 이마저도 삼성 1루수 자리에 [[이동수(야구선수)|이동수]]와 [[양준혁]], [[이승엽]] 등 젊은 선수들이 꿰차면서 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게 된다. 만약 외야수라도 볼줄 알았으면 그의 입지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.]'''}}} || 선수 시절 말년 삼성의 은퇴 제의를 계속 거절하자 은퇴식도 치루지 못한 채 1997 시즌 후 방출 당해 결국 은퇴했고, 자비를 들여 [[미국]]으로 코치 연수를 가게 되었다. 또한 과거 선수 시절에 팬들에게 캔 투척을 했다는[* 1990년 5월 29일 해태와의 3연 전 중 2패를 하고 병살타를 친 뒤에 관중석에 날아온 맥주 캔을 맞았는데, 분에 못 이겨 이것을 다시 던졌던 것.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만수가 던진 캔은 한 관중의 안경테를 맞추어 부러뜨렸고, 이로 인해 대구 구장의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. 결국 이만수는 관중들 앞에서 마이크 들고 직접 사죄를 했고, KBO로부터 벌금 및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. 그날 알려진 사실은 당시 그의 장남의 담임선생님을 초대한 자리 앞에서 보인 터라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밝혔다.장남은 그래서 한동안 아빠인 이만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. 이만수 입장에서도 백 번이고 할 말이 없었다고..[[http://sports.media.daum.net/baseball/news/breaking/view.html?cateid=1028&newsid=20110711130650603&p=SpoChosun]]] 웃지 못할 흑역사가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